문한림 메디라마 대표
문한림 메디라마 대표. (출처 : 더바이오)
올해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Annual Meeting 2025)는 면역항암제, 세포치료제, 항체-약물접합체(ADC), 방사성 치료제 등 차세대 치료제의 임상 결과와 더불어, 바이오마커 기반 정밀 치료, ctDNA를 이용한 최소잔존질환(MRD) 평가, 그리고 디지털 헬스 기술의 종양학 적용 등 미래지향적 주제들이 중심 무대에 올랐다. 특히 전통적인 암종 중심의 발표를 넘어, 약물 메커니즘과 표적 특이성에 기반한 트랙 구성이 강화되었으며, 이는 정밀의학 시대의 흐름에 맞춘 진화로 평가된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번 기고는 단순히 항암제 후보 물질들의 임상 결과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I-SPY2와 NCI-MATCH와 같은 공공 임상 플랫폼이 약물 개발과 환자 선별 전략에 어떻게 구조적으로 기여해왔는지를 되짚고, 정밀의학이 임상시험 설계와 치료 접근성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함께 조명하고자 한다. 이번 기고는 총 6편으로 나눠 차례로 <더바이오> 홈페이지에 기재된다.
정밀의학이 암 치료의 새로운 기준이 되면서,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2015년부터 NCI-MATCH(NCI Molecular Analysis for Therapy Choice)라는 전례 없는 임상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이는 기존의 장기·기관 중심 암 분류를 넘어, 종양의 유전적 이상에 따라 치료를 매칭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NCI-MATCH는 단일 질환군이 아닌, 하나의 마스터 프로토콜 하에 다양한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들을 사전에 정의된 수십 개의 치료군으로 배정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특히 희귀하거나 빈도가 낮은 유전자 이상을 지닌 환자에게도 치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공 정밀의학의 대표적 모델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전자 이상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토콜에 정의된 특정 기준이나 치료군의 부재로 인해 약물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도 존재했다.
올해 ASCO에서 발표된 연구는 바로 이러한 치료군 비배정(non-assigned) 환자들에 대한 후향적 유전체 분석을 수행한 것이다.
연구 대상은 MATCH에 등록되었지만 치료군에 포함되지 못한 101명으로, 이들의 혈장 기반 ctDNA와 포르말린 고정조직 샘플을 각각 수집하여 전장 유전체 기반 정밀 분석(comprehensive genomic profiling, CGP)을 시행했다.
분석 결과, 환자의 90% 이상에서 하나 이상의 유전자 변이가 검출되었고, 이 중 상당수는 임상적으로 actionable한 바이오마커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MATCH 프로토콜에는 해당 유전자 변이에 대한 치료군이 없거나, 동반 변이(co-mutations), 암종 제한 등의 이유로 배정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특히 FGFR, NTRK, RET, BRCA 관련 변이를 가진 환자들 중에도 치료 접근이 제한되었던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다.
또한 조직 기반 분석과 혈장 기반 ctDNA 간 변이 검출 결과의 일치율(concordance)이 높았으며, 일부 actionable mutation은 ctDNA에서만 탐지되기도 했다. 이는 종양 조직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ctDNA가 유의미한 유전체 분석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단순히 비배정 환자군의 데이터를 되짚는 데 그치지 않는다. MATCH가 치료 받은 환자에게서만 의미 있는 유전체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치료받지 못한 이들의 데이터 또한 임상시험 설계와 공공정책에 있어 중요한 ‘지표군(reference population)’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동시에, 임상시험의 제외선정 기준이 ‘과학적 타당성’만큼 ‘현실적 융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시사한다. 더 많은 환자를 포용하는 설계, 미탐색 유전자 이상에 대한 예비군 확장, 그리고 조직 외 접근법(ctDNA 기반)의 통합은 향후 공공 임상 플랫폼이 진화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NCI-MATCH는 여전히 실험 중인 플랫폼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그 실험이 단지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누락된 환자들의 유전체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임상시험의 정의 자체를 다시 묻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정밀의학은 환자의 유전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유전체가 놓인 제도와 설계까지 함께 바라보는 시선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기고 '맺음말'
올해 ASCO는 단지 치료제의 개발 성과를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치료 전략의 진화, 정밀의학의 구현, 진단기술의 고도화, 그리고 공공 임상 플랫폼의 구조적 역할에 이르기까지, 암 치료를 둘러싼 과학적·사회적 변화가 종합적으로 조명된 자리였다.
HER3, DLL3, KRAS, EGFR×HER3 등 새로운 타깃에 대한 임상적 진전이 발표되었고, 동시에 ctDNA 기반 최소잔존질환 평가, 환자 선별의 정교화, 그리고 치료 접근성의 재정의 같은 본질적 질문도 함께 논의되었다.
특히 I-SPY2와 NCI-MATCH는 정밀의학 시대에 단순한 약물 검증 플랫폼을 넘어, ‘누구에게 언제 어떤 치료가 필요한가’를 탐색하는 임상 설계의 프레임워크로 기능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이들 플랫폼은 신약을 빠르게 평가하고 배치하는 것뿐 아니라, 치료 기회를 놓친 환자의 데이터를 되짚고, 임상시험의 형평성과 유연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정밀의학이 진정으로 환자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과 약물뿐 아니라 설계와 시스템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이번 ASCO는 이러한 방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제도적으로 실현해가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서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 의미 있는 장이었다. 우리는 이제 ‘정밀한 약’을 넘어서 ‘정밀한 기회’를 설계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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